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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17 Daily 05_ [강연] 존 지안비토와 저항의 시학

  • 작성일2017.03.27
  • 조회수2,532




[강연] 존 지안비토와 저항의 시학




사진 / 강연을 진행하는 유운성 영화평론가



3 26() 17시에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2관에서 유운성 영화평론가의존 지안비토와 저항의 시학강연이 열렸다. 올해 17회차를 맞이하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은 미국 역사의 큰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기존 역사쓰기가 배제해 온 다른 목소리들을 되살리는 감독, 존 지안비토의 영화들을 특별전 섹션으로 소개하였다. 특별전 섹션에서는 걸프전이 미국에 미친 영향을 세 인물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후세인의 미친 노래>, 주필리핀 미군 부대가 있었던 지역 주변의 상황을 고찰하는 필리핀 2부작 <비행운(클라크)> <항적(수빅)>, 각 시대의 묘지와 현판 등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시각적으로 명상하는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잠 못 드는 미국인의 밤과 일상을 파고든 단편 <파 프롬 아프가니스탄: 나의 마음은 피에 젖어 있도다>를 상영한다.


비교적 러닝타임이 짧은 두 편,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파 프롬 아프가니스탄: 나의 마음은 피에 젖어 있도다>를 상영한 후 유운성 평론가의 도움으로 그의 영화에 대한 관점을 탐구하였다. 이 날 존 지안비토 감독은 대신 참석해준 평론가에게 장편의 편지를 보냈다. 자신의 영화를 인디다큐페스티발에 상영하도록 주도하신 신은실 프로그래머부터 찾아온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에,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을 만든 의도를 간단히 밝혔다.


“ (중략)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에서는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에서 말해지지 않는 걸 작지만 시각적인 방식으로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정의와 평등을 위해 노력하면서 투쟁하고 죽어갔던 이들의 역사를 그려보았습니다. 여러분 모두 등장하는 이름 그리고 사건에 익숙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미국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모든 나라의 역사 중 각자의 억압된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여러분들의 역사를 말하는 부분에서 공명하는 부분을 찾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일들을 아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물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활동가인 촘스키의 말을 인용하면; 역사적 기억 상실이 위험한 현상인 것은 단순히 도덕적이고 지적인 통합성이 저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앞으로 다가올 범죄의 길을 열기 때문입니다.”



사진 / <후세인의 미친 노래> 스틸컷


유운성 평론가에 따르면 존 지안비토 감독은 급진적인radical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를 비판한 메릴 스트립처럼 리버럴liberal한 영화인들과 같지 않다. 그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대신 해체를 주장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정의와 변형을 요구하거나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서, 세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미지를 가진 미국을 어떤 미국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해체한다. 이해를 위해 유운성 평론가는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중 가장 초기작인 2001년의 <후세인의 미친 노래>를 소개하였다.


<후세인의 미친 노래>는 존 지안비토 감독을 비평계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인지하게 만든 작품이다. 장 뤽 고다르의 표현을 빌려서 미국은 나라로서의 이름이 없다United of states, 동시에 20세기에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이미지의 총체로 이루어진 영토를 만들었다. 그래서 존 지안비토의 저항은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한다. 미국이라는 영토와 벌이는 싸움과 영화 자체와 벌이는 싸움이 동시에 이뤄진다.


<후세인의 미친 노래>가 특이한 이유는 서부영화의 수많은 요소를 차용하지만 서부극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장르가 웨스턴이라는 점에서 평론가는 영화를 해체적 웨스턴이라 명명하였다. 아랍과 미국이 벌인 전쟁의 여파를 탐사하기 위해 떠난 뉴멕시코는 서부극의 무대가 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세 인물은 각각 서부극의 전형적인 인물과 닮았다(전쟁에서 귀환한 군인, 잃어버린 인물을 찾아 사막으로 떠나는 사람,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벗어난 탕아). 미국의 대표적인 장르를 연상시키는 인물과 풍경 그리고 액션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부극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이미지를 해체한다. 이는 가깝게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8>, 멀게는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맨>조차도 간직하고 있는 서부극의 미적 체제까지 거부하는 급진적인 부분이다.


사진 /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스틸컷


그렇기 때문에 유운성 평론가는 21세기 이후 가장 중요한 영화 상위 10개 뽑는다면, 존 지안비토 감독의 작품들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작품들은 <후세인의 미친 노래> 그리고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이다. 두 영화 모두 저항하는 주체들 사이에 공통으로 공유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급진적이다. <후세인의 미친 노래>의 세 인물은 걸프전으로 영향을 받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 같은 국가의 시민으로 연상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 역시 무덤에서 호명되고 있는 과거의 사람들은 보편적인 가치나 이상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공식적인 역사에서 깊이 다뤄지지 않았던 저항을 수행했던 인물들을 불러내는 에세이 영화라는 통합적인 이해는 감독의 의도와 어울리지 않는다.


자세히 살피면 호명되는 인물들은 비균질적이고 공유하는 가치가 없다. 존 지안비토 감독은 공통의 영토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연대solidarity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유운성 영화평론가는 그러한 면을 흥미로운 지점으로 짚었다. 만약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의 죽은자들 중에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만 선별한다면 그에 따라서 이미지 역시 한정된다. 때문에 (평론가의 말을 빌려서) 보편성universality을 만들고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붙이는 연대는 정치적 색깔과 상관없이 위험할 수 있다. 공통의 가치로 일어나는 연대는 자유한국당도 한다는 비유가 명확한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 장면에 대한 견해는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을 좋아하는 관객들 사이에서는 분분하지만, 유운성 평론가는 감독의 결정을 지지한다. 무덤의 타임라인을 먼 과거에서 최근까지 끌어온 영화는 갑자기 집회 현장을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음악을 삽입해 과격한 편집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몽타주로 지나가는 집회들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전혀 반대편에 서있는 경우도 있다. 묘비명과 마찬가지로 구심점이 없는 저항이자 과거에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소환된 사람들의 일시적인 연대이다. 이는 통합적인 영화에서 이탈하여 전혀 다른 방식으로 넘어가는 존 지안비토의 특성과 일관된 마무리이다. 감독의 저항의 두 가지 축 중에서 영화 자체와 벌이는 싸움을 대표하는 장면이다.


사진 / <항적(수빅)> 스틸컷


존 지안비토가 보낸 편지 중에는 영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많다는 대목이 있다. 오해를 지우기 위한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첨언에 따르면 이는 영화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영화를 통해 집요하고 필사적으로 미국 그리고 미국영화의 이미지 체제와 싸우고 있다. 영토를 공유하지 않는 저항을 주장한 그의 관점을 바탕으로, 영화를 정해진 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의역하는 부분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은 하나의 영화 안에서도 장르를 바꾸는 존 지안비토 감독의 급진적인radical 성향이 드러난다.


유운성 평론가는 80년대의 데뷔작부터 최근의 <항적(수빅)>에 이르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유사점을 찾지 못했다. 연출자로서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나 양식을 오히려 배신했다. 그래서 미학적인 양식을 빌려서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을 만드는 한편, 정반대의 양식도 사용한다. 오히려 필요하다면 정치적 미학 대가들의 양식을 빌려오고, 때로는 원시적primitive이고 행동주의적activisim인 다큐멘터리의 양식을 빌린다. 그 결과물이 바로 필리핀 2부작, <비행운(클라크)> <항적(수빅)>이다. 존 지안비토는 본인 스스로의 영화를 가지고 작가의 영토, 예술가의 영토를 구축할 마음이 없다.


존 지안비토 감독이 직접 만든 제작사 이름이 그의 저항의 시학을 대표한다. ‘움직이는 빛traveling light’, 즉 고정되지 않는 운동을 말한다. 존 지안비토 감독의 작품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미학적인 성취가 뛰어난 <이윤 동기와 속삭이는 바람>을 본 관객들에게 유운성 평론가는 아직 상영중인 다른 추한 영화를 많이 보기를 권유하였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확장시킨 존 지안비토 감독의 관점을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한 좋은 자리였다.


/ 데일리팀 이해찬

사진/ 행사기록팀 김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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