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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2019 <추방자들> : 바라봄의 불투명성

  • 작성일2019.06.03
  • 조회수570

SIDOF 2019 <추방자들> : 바라봄의 불투명성

신광호 (인디다큐페스티발2019 관객모니터단)

 

에세이영화에서부터 실험영화, 설치미술, 무용 등을 오가는 백종관의 이력은 다채롭다. 그렇기는 해도 그의 영상 작업을 두드러지게 특징짓는 것이몽타주라고 말하는 데에 이전까지 무리는 없었다. 대표적 작업인 <호소런>(2008), <이빨, 다리, 깃발, 폭탄>(2012), <와이상>(2015), <순환하는 밤>(2016) 등은 이미지와 사운드와 같은 일상에서 수집된 단편들을, 이를테면 파운드 푸티지나 아카이빙된 라디오 일부를 한데 엮어내거나 교차, 충돌시키는 방식으로 일종의 화학작용을 유도해 낸다. 이는 매체의 질료적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탐구로부터 그 작업이 자리하고 있는 역사적 컨텍스트를 환기시키는 백종관의 특유의 방법론이었다. 그런데 최근 그의 작업(근작 <True Love Waits>(2018)를 포함하여)에서 어떤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결정적으로, <추방자들>은 단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진 롱테이크 영화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하면 반-몽타주적이라고까지 할 만하다. 저녁 무렵, 일본(후쿠오카)의 어느 공원으로 보이는 곳. 벤치로 조성된, 야트막한 언덕 형의 층계에 세 사람이 다가온다. 그들은 층계에 걸터앉아 무어라고 대화를 이어가고, 카메라는 그들이 프레임 내에 들어서기 전부터 줄곧 멀찍이서 고정된 채로공원의 모습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앞선 자막(’DAY 10’)을 통해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장소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10일째에 촬영된 것임을 안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뒤따른다. 카메라는 같은 장소를 열흘에 걸쳐 촬영하고 있는 것일까? 저 장소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그렇다면 10일째의 이 촬영 분에는 앞서 촬영된 것들에는 없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감독으로 하여금 여러 촬영 분 가운데 10일째의 것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영화가 진행되며 일본의 어느 공원이라는 장소와 거기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다른 방향으로 돌려진다.

 

우선 영화의 사운드가 우리를 눈앞에 보이는 풍경으로부터, 그러니까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세 사람으로부터 밀어낸다. 우리는 인물들의 대화는 물론이고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원 주변의 소음조차 듣지 못한다. 대신 어느 실내의 소음, 아마도 카메라가 공원을 향해 렌즈를 겨눈 채로 설치되어 있을 건물 내부의 소음을 듣는다. 영화가 어느 건물의 실내에서 유리창 너머로 촬영되고 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관건이 되는 것은 바라본다는 것 자체이다. 인물들과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풍경으로부터 그것을 바라본다는 행위로의 이동. <추방자들>의 사운드는 (화면에 나타나는) 보여지는 자리와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보는 자리를 구획하고, 우리에게 후자의 자리를 암시한다. 그로써 두드러지는 것은 바라봄이라는 행위 자체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라본다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추방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지각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인식론적 실험이 된다. 그리고 이는 바라본다는 것의 불투명함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날이 저물어감에 따라 서서히 떠오르며 시야를 장악하게 되는 것은 카메라의이편저편을 가르고 있는 유리창의 불투명함이다. 공원의 세 사람은 점차로 어둠의 뒤편으로 물러가고, 화면의 한가운데를 희미한 빛의 무리가 띠의 형태로 가로지른다. 화면을 가로로 나누어버리는 이 빛의 막대는 줄곧 거기에 자리하고 있던 유리창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투명한 유리창이 어슴푸레한 빛에 의해 불투명해지는 순간, 즉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공원의 세 사람이 사라지고 오로지 옅은 빛의 무리만이 화면의 위아래를 갈라놓게 되는 순간, 우리는 바라본다는 지각 행위가 지니는 불투명성, 혹은 관찰의 이질성이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것과 마주하게 된다. 덧붙여, 영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카메라를 발견하는 때에 벌어지는 시선의 되돌려짐은 <추방자들>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운동, 동역학의 구두점으로 기능한다. 장소, 인물, 사건으로부터 분리되는 사운드, 그를 통해 드러나는 비가시적 시선의 자리, 날이 저물어 감에 따라 유리창에 새겨지는 빛의 불투명함, 마지막으로 시선의 되돌려짐. 10일째의 촬영 분을 오케이 커트로 결정지은 데엔 이 모든 것들 간의 유기적 작용이 바라본다는 것의 불투명함을 분명하게 가리켜 보인다는 것이 주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백종관의 몽타주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수집된 단편들을 콜라주하는 방식이 지각의산만함을 시험하는 적극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추방자들>에서의 방법은 더 근본적으로 지각 자체에 이미 기입되어 있는이질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관조적인 태도와 관계가 있는 듯이 보인다. <추방자들>의 영어 제목인 ‘The History of Perception’은 이미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처럼지각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이다. 그 외견 상의 투명함에 의해, 그 자연성의 참칭으로 인해 지각의 역사에서 추방되어 왔던 것들이란 무엇일까? 이는 이 영화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백종관의 작업을 들여다보는 데에 중심적인 물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