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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2019 <94. 비디오 앨범> : 순수의 적

  • 작성일2019.06.03
  • 조회수628

<94. 비디오 앨범>(허세준) :  순수의

장준혁(인디다큐페스티발2019 관객모니터단)

 

 

이유를 없는 쓸쓸함’, 불분명한 감정에서 <94. 비디오 앨범>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감독은 이 감정의 원인과 그것을 해소할 방법 찾으려 일련의 시도들을 행한다. 자신이 다녔던 유치원의 1994년 졸업 비디오 앨범을 돌려보거나, 비디오 속의 유치원을 찾아 카메라 안에 담기도 한다. 열화되어가던 비디오 테이프의 화질과 요즘은 쉽게 찾아볼 없는 구형 캠코더에 담긴 것들의 모습이 그리 달라 보이진 않는다. 화면이 각각 촬영된 시기는 20여 년이 훌쩍 뛰어넘게 차이가 나지만 당시의 행위와 현재의 감정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는 관계에서 오는 괴리감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이 어둑해질 맞게 되는 바람과 울적함, 오래 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할 밀려오는 슬픔, 이것들은 적지 않은 이들에게 찾아오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일상의 대화에서 종종 나눠지는 소재들과는 거리가 멀다. 몇 마디의 말로 단정지어 설명하기에는 다소 애매모호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유 없는 우울함을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접점을 찾아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영화는 이를 때로는 정적으로, 때로는 리듬감 있게 흘러가는 시각적 이미지들과 독백적 내레이션을 활용하여 보는 이들에게 이해시키려 한다. 

 

 



<94. 비디오앨범> 현재의 자기 모습과 대비되는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의 모습을 계속해서 비교한다. 비디오 속에서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뛰어 놀던 유치원생과 거울에 비친 성인 남성은 동일한 인물이지만 그것들이 품고 있는 분위기는 명확히 다르다. 화면 안의 아이에게 있고, 거울 속의 어른에게 없는 것이 있다. 화자가 걸어온 삶의 과정들은 영화 내에서 드러나 있지 않지만, 시간 속에서 누구나 그렇듯이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동심일 있고, 소소한 꿈일 있다. 혹은 시간에서만 느끼고 행할 있었던 다른 무언가일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은 다시에게 되찾아 있는 것인가? 영화는 이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타개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답답함의 끝에 감독은 다소 무모한 행위를 행한다. 유치원 졸업 앨범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덧씌운다. 열화된 화면 위에 움직이는 지금의 감독 모습은 위화감을 넘어서 기이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부자연스러운 합성화면만큼이나, 유치원복과 유사한 복장을 어울리지 않게 따라 입은 감독의 모습만큼이나, 화면 안에 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뛰어 노는 감독의 몸짓은 이상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고유하게 남아있는 특정한 시간과 기억에, 있어서는 안 되는 방해꾼이 끼어든 것 일 수 있다. 이 편의 리믹스 버전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 위치하는 어색한 간극을 넘어서야 완성이 된다. 이는 닿을 없는 시간에 존재하는에게 닿기 위한 시도이다.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접촉이나 교감 대신 지금의 화자가 택한 정신적인 접속이다. 이로서 공존할 없는 개체가 프레임 안에 존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로의 회귀를 통해 그 이후의 진보를 꾀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부산 유치원과 자신이 살던 곳을 찾아가 담아낸 장면들은 현재 시제의 촬영 본임에도 불구하고 구형의 4:3 비율 캠코더로 촬영되었다. 크로마키 앞에서의 장면도 같은 방식으로 촬영되었고, 이것은 같은 사이즈의 1994년도의 비디오테이프 프레임 안에 삽입된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내내 끊임없이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 마치 옛 것을 표방하는 듯한 이 서식의 목표는 한 지점을 향하고 있다. 지금의 감정적 상황들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흔히 좋은 기억을 새로이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일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즐거운 일들을 벌인다거나 지난 기억의 흔적에서 멀리 떠나 회피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94. 비디오 앨범>은 시간을 역행하여 슬픔의 골짜기를 향해 발진한다. 이 불안정해 보이는 질주는 감독이 현재의 시점으로 돌아와 다시 한 번 자신을 마주해서야 막이 내린다.

결국 작업을 통해서 감독이 어두운 마음을 새로운 기억으로 덮어내는데 성공했는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일 있다. 반대의 경우가 오히려 극적으로는 정석적인 엔딩이겠지만, 사람의 모든 감정이 그러듯이, 시간의 흐름이 사람의 의지를 벗어난 자연의 영역에 있듯이,  그로 인해 찾아오는 공허함도 한 편의 영화로 단정지어 종결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는 리믹스된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진취적인 시도가 남아있다. 비록 그 성취점에 닿지 못했어도 언젠가 이 비디오들을 다시 봤을 때, 부디 슬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한 마디는 영화 전반을 감싸고 있는 고민을 관통한다. 잊혀진 순수성에 대한 무모한 접근이 당위를 획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지나간 시간들을 가지고 있다. 유년 시절을 추억하거나 잊혀져 가는 시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등의 마음을 갖지만, 대부분이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는다. 과거의 내가 현재를 사는 내가 아니듯이, 시절에 존재하지 않는 본인이 개입 불가한 영역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94. 비디오 앨범> 이러한 딜레마를 돌파하려 한다. 침울한 감정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한 보 나아가려는 움직임. 이것이 우리가 삶을 대해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