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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2020_Daily_05 [리뷰] 국내신작전 10 <3억 분의 1: 난임부부 다이어리>

  • 작성일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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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국내신작전 10 <3억 분의 1: 난임부부 다이어리>



실내, 사람, 주방, 캐비닛이(가) 표시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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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 분의 1: 난임부부 다이어리>

 

한국 사회에서 결혼, 임신, 출산, 육아라는 일련의 과정은 단순히 ‘어른이 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니다. 사랑하는 파트너와 내 가정을 이룬다는 기쁨만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때로 너무 당연하고 보편적인 생애주기의 필수 요소로 느껴져서, 그 경로에서 절대 벗어나거나 탈락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이 되고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된다. 박일동 감독의 <3억 분의 1: 난임부부 다이어리>는 그 ‘당연함’이 어디서 왔는지, 불안하고 초조한 감정들이 평범한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을 때 나의 소망과 현실을 어떻게 조율할 수 있을지를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다큐멘터리다. 박일동 감독의 따뜻한 어조와 점차 깊어지는 고민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화두를 던진 주제뿐 아니라 그 질문을 받아들여 함께 숙고하고 토론할 의무가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까지 되돌아보게 된다.


박일동 감독 부부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다큐멘터리는 20분 가량의 영상 4개를 이어붙인 옴니버스 형식을 취한다. 박일동 감독은 5월 30일 20시 30분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20분이라는 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 20분 동안 2~3개의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얽어가며 진행되면서도 간결한 호흡을 가진 시트콤도 정말 좋아한다. 짧은 네 개의 에피소드를 합쳐서 하나의 큰 그림을 그려내면 관객분들이 함께 호흡하기도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이런 구성 방식을 택한 이유를 밝혔다.

제목은 태아가 수정될 확률인 ‘3억 분의 1’과 부부가 실제로 시도했던 IVF(체외수정∙시험관 시술을 이르는 말) 등에서 따왔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이야기는 난임 클리닉에서의 상담과 시술 과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박일동 감독은 모두가 개인적∙신체적인 이유만으로 난임이 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들이 아이를 이런 사회에 낳을 수 없다고 판단하게 만든 ‘사회적 난임’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남아프리카의 암컷 코끼리 98%가 상아 없이 태어나도록 진화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사람들도 오죽했을까’라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는 내레이션에서는 그 깨달음의 울림이 극대화된다. 아이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고난 역시 만만치 않다는 점을 짚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안타까움과 슬픔에만 천착하지 않고 아이와 잘 살기 위해, 아이를 잘 살게 하기 위해 어른들이 먼저 준비하고 고민해야 하는 일들에도 집중한다. 아이를 갖기로 선택하고 노력 중인 감독 부부가 아이에게 수시로 보내는 영상 편지에서 이런 성숙함이 가장 잘 드러난다. 감독 부부가 불러내는 ‘아이’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야 한다니 정말 불쌍한’ 존재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새 가족이기도 하고 함께 잘 살아보고 싶은 시민사회의 예비 동료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에 꽤 길게 등장하는 세 마리의 집고양이와 동네 고양이 ‘삼순이’ 그리고 그 아들 ‘삼돌이’도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동네 고양이들을 돌보고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입양을 보내기도 하면서 부부는 ‘이럴 거면 왜 태어나게 한 거야’라는 답답함과 안쓰러움을 품기도 하고, ‘아이도 셋째까지 길러봐야 그게 어떤 건지 아는 것 같다’라는 깨달음을 나누기도 한다. “(고양이와 인간이) 유사한 아픔을 겪는 상황이 병렬적으로 배치되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밝힌 감독의 의도가 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부부의 대화와 갈등에 집중해서 영화를 읽어낼 때 얻는 시사점도 많다. ‘내 아이를 갖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초조함 때문에 우울 증세까지 생겼던 박일동 감독과 ‘너(감독)는 나보다 용감하구나’, ‘너는 자기 유전자를 가진 아이에 대한 욕망이 크구나’라고 말한 아내 오경주 씨의 모습에서는 분명한 온도 차가 발견된다. 아이를 원하는 건 모든 인간의 본능이란 점을 언급하면서도 이런 세상에 아이를 굳이 낳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오경주 씨의 영상 편지에서 ‘우리’와 ‘서로’를 호명할 때, 그 대상은 남편을 포함한 세 가족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과 아이 둘뿐이란 점도 인상 깊었다. 

아내의 ‘너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거다’라는 말은, 사회가 정해준 생애주기를 의심조차 하지 않던 남편으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신체적 변화와 고통을 직접 감당하고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와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홀로 고민하는 주체는 여성이며, 여성의 입장과 논리와 기분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의 머릿속에서도 종종 지워지고 마는 현실이 영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영상 속의 시간이 흐를수록, 박일동 감독 역시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과거의 자신을 성찰하는 듯하다. 한 관객이 최근 청년 세대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며 비출산을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 의견을 묻자, 박일동 감독은 “제가 인지한 것보다 훨씬 많은 분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 안도감이 든다. 이전에는 지금의 20대가 생각하는 지점까지 저의 사고가 뻗치지 못했던 것 같다.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여성인 아내의 입장에서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이제 안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오는 행복이 분명 있지만, (출산은) 당연한 게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렇게 꾸준한 대화와 노력을 통해 남편은 아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부부는 함께 슬픔을 견디는 방식을 배우며 한 뼘 더 성장한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아이에게 ‘너를 너로서만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라고 약속하는 편지의 감동이 더더욱 진했던 이유다.


부부는 숱한 죽음과 헤어짐을 마주한다. 첫 에피소드 말미에 언급된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건, 병원에서 돌아온 자식 삼돌이를 거부하는 삼순이, 첫 아이 동주까지. ‘다른 줄 알았던 나도 결국 죽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범인’이었다는 절절한 성찰은 모두의 마음에 깊이 박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내 아이를 초대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고 결정한다. 헤어짐의 아픔과 두려움을 넘어 만남의 의지를 다지는 모든 순간이 뜻깊었다.

아이를 위한 기념 영상 촬영으로 출발해 ‘모두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 것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는 확장된 의미로 완성된 박일동 감독의 <3억 분의 1: 난임부부 다이어리>는 6월 1일 월요일 12시 한 차례 상영을 앞두고 있다.



글/ 데일리팀 장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