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크리스마스 캐럴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만든 홈 비디오

빈티지한 분위기로 스케치 된 크리스마스 시즌 도시는 화려한 색감과 분주한 소리로 가득한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내 그 광경은 다양한 방향으로 일그러진다. 푸근한 기분에 나른해지거나 즐거운 마음이 들어 표정이 살짝 상기되는 태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취할 수는 없게 된다. 소리도 영상도 각각 제 안에서 분열되거나 변형되면서 재결합을 이루고, 그 시청각 이미지들이 다시 중첩되면서 도시의 크리스마스 이미지가 재구성된다. 소리, 영상, 그리고 소리와 영상 간의 불협화음 몽타주가 점점 더 고조되고, 불협화음 악보를 연주하는 것처럼 전개되는 크리스마스 이미지는 기괴하고 낯설다.
이렇게 재구성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구체적인 내러티브 없이 나타나고, 그 영상은 개개인의 심리보다도 마치 도시 그 자체가 자아내고 있는 정서인 것처럼 다가온다. 물론 이 영화는 유학생의 시선을 통해서 광경은 주어지지만 관계로는 들어갈 수 없는 시공간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외부자의 심리에 귀속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를 갖지 못하고 표면에서 분열하는 크리스마스 이미지의 흐름은 한 개인의 외로운 감정에 닿기보다는 도시의 특정한 리듬을 표상한다. 내러티브를 구축하거나 장면들에 시선을 주고 마음을 쏟는 드라마 대신에, 철저히 시청각 이미지의 낯설고 기괴한 표면을 포착하고 배치하는 데에 몰두한 결과다. 덕분에 이 영화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소재 영화들에서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는 임무를 해온 것과는 달리 도시의 정서를 인지한다. 그 도시는 깊이 없는 운동을 하면서 익숙하지만, 이해될 필요가 없고 이해될 수도 없는 빛깔을 전시하고 소리를 연주한다. 그것은 어쩐지 공허하고 병적이어서 살짝 무섭기도 하다. 화려하고 분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건조하고 쓸쓸한 도시의 크리스마스를 호흡하는 영상이 매력적이다.
이런 도시의 리듬은 주변 일상을 쉽게 스케치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의 성찰물로써 도착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손쉽게 뻗어 포착된 도시의 시간은 교정되고 변형될 재료들이 되고, 필름의 물리적 특성을 변형시키는 아방가르드나 실험영화의 기법들은 도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한 쇼트의 기반이 된다. 스마트폰에는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필터를 장착한 다양한 앱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구의 편리함과 다양성이 곧바로 성찰적인 감각을 전하게 될 리는 만무하다. <크리스마스>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이런저런 일상의 이벤트를 스케치하고 그 장면들을 무엇보다 기분 전달의 방법으로 소개하는 21세기의 포착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영상 및 소리 재료들 자체가 가진 성질에 천착해서 그 재료들이 더욱 감각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집중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동영상 이미지에서 드라마를 재현하는 역할을 걷어내고 특정한 시공간이 부과하는 정서를 생산한다. 도시의 시간을 사유하도록 하는 흥미로운 감각 경험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프로그래머
채희숙

2020 Pugnant Film Series(그리스)

김정아 | jungahkim12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