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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박수현
작품정보
2016 | 21min 20sec | 컬러 | DCP | 자막없음
태그
#노동

 

시놉시스

2011년 개나리 필 무렵까지 계속되었던 1년간의 용역생활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아직도 보존되고 있는 상도 4동에서 보내는 하룻밤.

 

연출의도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조세희, <뫼비우스의 띠> 中

그 무엇도 변하지 않고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를, 시야 바깥에서 끊임없이 재건축 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그 동어반복적인 이야기가 매일 밤 낯설게 다가오는 개별자들을, 40년의 시간 동안 빌딩들 사이로 숨어 더 은밀하게 낮은 곳으로 스민 절망을 지겹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밤이 밝았다. 과연 아침이 되었는가?

 

프로그램노트

구멍 난 벽 사이로 한 집안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밤중에 찍은 탓에 육안으로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분명 그곳은 한때 사람이 살았으나 이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카메라는 부동의 자세로 시간의 지속을 견뎌내면서 철거 현장의 파편들 사이로 명멸하는 빛을 깊이 있게 응시한다.
영화는 내화면의 이미지와 외화면의 사운드를 병치함으로써 연출의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미지의 경우, 야심한 밤에 적외선으로 촬영했거나 환한 대낮에 원거리에서 카메라를 줌인해서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다. 화면 곳곳에는 흡사 철거 현장의 참혹함을 필터링하듯이 물질성과 가시성이 상실된 사물들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콘크리트 조각, 부서진 가구, 쓰레기 등은 삶이라는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무질서하게 널려 있는 파편들로 보인다. 이러한 생명력 없는 이미지에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 영화가 선택한 방법은 응시의 지속과 반복이다.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로 어딘가를 혹은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그도 아니면 곁눈질로 훔쳐보기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식별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철거 현장의 잔혹함을 지각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한편, 사운드의 경우는 실제 철거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한 남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지막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철거 현장의 충격과 공포를 증언하기에 충분할 만큼 단호하다. 다만, 그의 말 속에는 어딘가 모르게 간극이 많다. 남자가 어릴 적 꿈꾸었던 일과 실제 자신이 성인이 되어 해야만 했던 일 사이, 철거 용역과 철거민 사이, 철거 용역과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고용주 사이 등이 그러하다. 남자는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철거 용역과 철거민 사이를 오가면서 끊임없이 분열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정신 분산적인 의식은 휴지기, 암전된 화면, 침묵과 같은 영화적 간극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간극은 악을 대행했던 어느 소시민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윤리 의식이 자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자는 영화가 끝나갈 즈음 깊은 한숨을 섞어 “사람답게 살 수 있었으면...”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 영화는 국가라는 혹은 자본이라는 추상적이고 신화적인 폭력에 의해 한갓 벌거벗은 생명으로 추락한 사람들에 관한 애가이다. 그 애절한 노래는 어둠 속에서 빛이 출현하고, 밤의 끝자리에서 아침이 시작되는 리듬을 갖고 있다. 이것은 악몽의 도돌이표이거나 파국 이후에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 그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전자의 고리를 끊고 후자의 상태로 나아가는 것만이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이도훈

 

감독소개

박수현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에서 살고있다. 아무래도 토질이 맞지 않는 듯 하다.
<일>(2016)

 

제작진
제작     박수현 
촬영     박수현 
편집     박수현 
사운드 디자인     표용수 

 

상영이력
2016 서울독립영화제

 

배급정보
박수현 | bump_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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