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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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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장막

감독
김예솔비
작품정보
2019 | 14min 42sec | 흑백 | DCP | 한글자막

 

시놉시스

안개의 시간. 어긋난 궤도로부터 틈입한 목소리.

 

연출의도

오랫동안 살고 있던 동네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섬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섬이었던 동네의 형상을 상상하는 일은 육지 위에 서 있으면서 물 위에 떠 있는 감각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것처럼 어지러운 체험이었다. 이곳뿐 아니라 도시의 지형지물은 질주하듯 변화하고, 이는 매번 무언가가 매몰되고 솟아오르는 과정이어서 마치 무수한 시간이 소화되지 못한 채 중첩된 것처럼 느껴진다. 뒤섞인 시간 속에서, 세상은 소멸된 령(靈)들이 남긴 잔상과 잔음으로 가득 찬 뿌옇고 흐릿한 실체를 드러낸다.

 

프로그램노트

어딘가에 들러붙은 접착 스티커를 떼어 내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그 가장자리를 살살 긁어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듯이, 〈안개, 장막〉은 한 데 겹쳐 있는 시간의 꺼풀(mantle)을 하나하나 벗기기 위해 우선 그것의 흐름을 느리게 조정한다. 대부분의 장면이 아주 미세하게 느린 속도로 편집되어 있다.
새소리와 비슷하지만 새소리는 아닌 알 수 없는 음성은 이 영화의 화자의 것인데, “발성의 흔적”만을 들려주고 있어 혼령이 아닌 자가 알아듣기 위해선 자막이 필요하다. 일종의 퍼포먼스 기록이기도 한 마지막 몇 분을 제외하면 예외 없이 이 음성에 조응하여 등장하는 자막이 〈안개, 장막〉에서 제공되는 최소한의 친절이다. 한편 새소리와도 같은 음성의 배경에 깔린 사운드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렵다. 단 한 번의 예외가 공원에서 강강술래 하듯 둥그렇게 모여 서서 손을 잡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함성을 내는 사람들의 장면에서 들린다. 그 함성은 화자에 의해 혼령의 소리로 여겨진다.
이 영화의 대부분의 이미지는 자막의 내용에 가깝게 붙어있다. “이곳이 한때 섬이었다”는 사실을 화자에게 알려준 자가 흐르는 물을 상상했다는 대목에선 강물을 클로즈업한 화면들이 나오고, 화자가 육지가 되어버린 섬에 대해 비통해하며 “모든 비밀을 드러낸 육지”에 “초라하다”는 수식을 붙이면 콘크리트 바닥 위에 철제 다리 네 개를 딛고 서 있는 플라스틱 의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내부에서 무한히 중첩될 뿐이며 그래서 우리가 기억의 형체를 볼 수 있다면 안개처럼 가로막힌 흰 장막만을 보게 될 거라고” 하는 대목에선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여 하얀 안개가 등장한다.
마침내 도달하는 장면은 굳이 말하자면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을 숲에서의 퍼포먼스 장면이다. 하얀 장막 같은 것이 낙엽이 쌓여 있는 겨울의 숲 바닥에 깔려 있다. 퍼포머가 숲 너머에서 걸어와 그 위에 오르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사라진다는 하나의 서사가 이 장면에 존재하나, 그렇게만 축약되기에는 다양한 겹이 시작과 끝을 메운다. 투명도를 달리하는 이미지의 겹들이 동시에 나타나거나 각각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섬이 육지가 되는 동안을 이르는 한 덩이의 시간을 유비 하는 이 짧은 한 문장의 서사는 반투명한 겹들의 겹침으로 이전된다. 앞서 화자가 말하던 것들이 분명해진다. 기억의 형체는 흰 장막으로서만 드러날 것이며,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중첩된다는 사실. 이 장면에서의 새소리(와도 같은 발성의 흔적)에, 번역으로서의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인상 깊은 것은 자신을 덮은 하얀 장막을 걷어 젖히는 퍼포머의 행위가 기록된 반투명한 레이어들이 몇 개인지 알 수도 없이 겹쳐져, 그를 무한한 걷어 젖힘의 행위 속에 던져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결국에 그는 장막을 완전히 걷어 젖히고 숲 너머로 가버린다. 퍼포머가 곧 화자라고 한다면, 그는 잊어버린 기억(그는 앞서 기억나지 않는 얼굴과 음성에 대해 말한다)에 대해 제(祭)를 지내는 것이었을 게다. 그것은 또한 섬이 육지가 되는 시간에 대한 제이기도 하다.

「마테리알」 편집인
함연선

 

감독소개

김예솔비
1995년 서울 출생.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영화 평론 부문으로 등단했다. 현재는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서 영화(M.F.A.)를 전공하며 영화적 사유의 실천으로서의 글쓰기와 사진, 영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록-이미지가 픽션을 매개하여 재맥락화 되는 과정에 집중하며 실험적인 영화 형식을 탐구 중이다.
제작진
제작     김예솔비 
촬영     김예솔비 
편집     김예솔비 
상영이력
없음
배급정보
김예솔비 | schoolholida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