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목) ~ 06.03(수)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인디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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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회 기념 특별전      

민중의 용기

감독
우카마우 집단
작품정보
1971 | 90min | 컬러 | DCP | 한글자막 | 불어자막

 

시놉시스

1967년 볼리비아 시글로 제20광산에서 파업 중이던 주석 광부와 가족들을 공권력이 학살한 사건을 재연한 다큐멘터리. 학살의 원인과 책임을 알아야겠다는 민중의 요구를 가시화하는 것이 영화의 숙제임을 믿었던 이 작품의 연출 방식은, 서울영화집단의 <수리세>(1984) 등 한국 영화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프로그램노트

1911년의 멕시코 혁명과 더불어, 1952년 볼리비아 혁명은 라틴 아메리카와 제3세계 해방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볼리비아 산업의 중추인 주석 광산 노동자와 농민,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혁명을 달성한 민족혁명운동(MNR)은 부분적인 토지개혁을 이루고 해외 자본이 장악했던 광산의 자원 주권을 일정 정도 회복했다. 이즈음,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칠레에서 철학과 영화를 공부한 호르헤 산히네스가 볼리비아로 돌아온다. 산히네스는 시나리오 작가 오스카르 소리아와 함께 볼리비아 영화학교와 시네클럽을 창립하고, 영화잡지 「최초」를 창간하여 무상으로 배포하였으며, MNR 정부의 10개년 발전계획과 해방운동을 다룬 <혁명!> 등의 단편들을 만들었다.
한편, 볼리비아 정국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국내외 반혁명 세력의 공작으로 1960년대에 경제 위기가 닥치자, 미국 자본이 공업 생산 부문을 다시 장악하고 IMF가 반노동적 구제금융 정책을 강요하면서 MNR 전선이 분열하여 정부와 광산노동자들이 대립한다. 급기야 1964년에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에스텐소로 정부를 전복하고 독재정권이 들어선다. 정권을 장악한 공군 장성 출신 바리엔토스는 광부의 임금을 40% 삭감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진압할 목적으로 탄광에 군대를 수차례 투입하여 광산 노동자들과 주민들을 학살한다. 산히네스와 소리아·라다는 우선 코야쉬요(Kollasuyo) 집단을 결성하여, 군대가 장악하고 있던 알티플라노 지역 광산 노동문제를 다룬 중편 <붕괴>와 알티플라노 농민들이 주인공인 장편 <우카마우>(1966)를 만든다. 비전문 배우인 농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직접 제시하는 <우카마우>는 볼리비아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상영되어 호평을 얻는다. 그러자 바리엔토스 정권은 <우카마우>에 참여한 영화인들을 탄압하고 정부가 설립했던 볼리비아 영화연구소(ICB)를 폐쇄한다. <붕괴>와 <우카마우> 외에도 산히네스와 동료들은 ICB에서 뉴스 27편, 다큐멘터리 4편을 제작했는데, 정부는 이 필름들도 압류해버렸다.
1967년 산히네스와 소리아, 라다는 안토니오 에귀노와 함께 자신들의 첫 장편 픽션 <우카마우>에서 이름을 딴 ‘우카마우 집단’을 결성한다. 그들이 실존 인물들과 다시 협업한 <콘도르의 피>는 1969년 개봉 당시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지만, 이에 맞선 시민들의 뜨거운 저항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다음 작품인 <민중의 용기>는 외국 자본과 결탁한 군대가 1967년 6월 시글로 20광산 광부들을 학살한 사건을 재구성한다. 생존자와 유족ㆍ목격자들이 제작진과 토론하고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서서, 민중이 영화제작 주체가 되는 ‘우카마우’의 방법론을 꽃피운 작품이 바로 <민중의 용기>였다. 이 영화는 1967년 사건 외에도 1947년 이래 국가와 해외 자본이 결탁하여 벌인 광산 학살 사건 대부분을 기록하고, 학살 책임자들을 지목하며 증언한다. 13년 뒤, 사북항쟁과 광주항쟁을 겪은 남한에서 결성된 서울영화집단이 <민중의 용기>를 염두에 두고 <수리세>(1984)를 제작한 것은 지당한 역사의 흐름이었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집행위원
신은실

 

감독소개

우카마우 집단
호르헤 산히네스는 1937년 라파스에서 태어났다. 볼리비아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칠레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열성적인 영화제작자 겸 이론가인 그는 볼리비아 인디오들의 종속, 저개발 그리고 착취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장편 극영화를 만들었다. 호르헤 산히네스는 ‘우카마우 집단’ 결성 시기부터 극작가인 오스카르 소리아와 함께하는데, 이 집단의 이름은 산히네스의 첫 번째 장편영화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우카마우 집단’은 국가 상황의 원인에 대한 연구를 보여주면서, 토착문화를 강조하고자 하는 영화적 표현을 추구했다.
제작진
제작      
촬영      
편집        
연출     호르헤 산히네스 
상영이력
없음
배급정보
Pedro Lijeron Vargas | pedro@entrecruzar.com